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은행나무 출판
(이미지 출처 :
알라딘)
서점에 가면 꼭 눈에 밟히곤 했는데, 미루고 미루다가 어제 야근 중 충동적으로 구입한 책입니다.
1. 제가 일하고 있는 팀의 PL님 도서 뭉치에서 발견, 먼저 읽어버릴 걸 하는 약오름.(결국 먼저 읽었지만 :P)
2. 곧 잘 가는 블로그의 주인이 때마침 이 책에 관한 이야길 포스팅.
3. 읽고 나면 기분이 아주 좋아진다던데, 괴롭고 답답한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주려나 하는 기대감.
때문에 회사앞 서점에서 질러버린거죠.
헥헥
저는 화가 났을때, 그 정도와 진행을, 미리 멋대로 분류해둔 '분노의 네가지 양상'에 맞추어보곤 합니다.
첫번째, 원인을 알고 있고 대상도 확실한 분노.
두번째, 원인은 알지만 대상이 불확실한 분노.
세번째, 원인은 모르지만, 대상을 알고 있는 분노.
네번째, 원인도 대상도 알 수 없는 분노.
보시다시피 원인과 대상을 두가지 축 삼아 칸치기를 해보는 거죠.
어느 칸에 들어갈까를 곰곰히 생각하다보면, 네번째에 속하던 것이 실은 두 세번째 였다는 것을 알게되는 때가 있고, 그러다 보면 저절로 화가 사그라들거나, 스스로의 과실을 어느 정도 인정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기에 항상 이렇게 아름다운 수순을 밟게 되진 않죠. 폭발하면 누군가를 참수하고 싶어질 때도 있습니다.)
저에게 이 분류는 무척 중요합니다.
1. 붉은 마킹이 된 구역에 들어서면, 전 임계점에 다다르게 되고,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면, 치료가 필요해지거나 그게 뭐든 다 집어치우게 될 확률이 크기 때문에 예방이 가능하다는 건 아주 해피한 것이고.
2. 분노는 저의 테마 중 하나거든요.
어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는 아니었지만, 대신 원인이 너무 많았습니다. 대상도 너무 많았죠.
자칫 잘못하면 레드존에 가까워질 수도 있고, 잘 다독이면 첫번째에서 그칠 수 도 있는 뜨거울까말까 물렁물렁 상태(-_-)
이럴 때는, 제 경험에 비추어, 대개 자신이 원인일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나치게 예민하기 때문에 일상이 스트레스로 바뀌고, 모든 대상에 공격적으로 반응하게되는.
썰이 길었는데, 그래서 이 책이 필요했던 겁니다.
그리고 결과부터 얘기하자면,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네요.
백돼지처럼 생긴 괴짜 신경정신과 박사 이라부와 F컵졸라섹시간호사 마유미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환자별 옴니버스 구성이기 때문에
쉽고 빠르고, 명랑한 템포 입니다.
이라부는 무척 기이한 인물이라(어쩌면 이게 또 스테레오 타입이겠습니다만), 논리적인 단계를 밟아 상황을 해체하는 방식은 바랄 수 없습니다.
그저 이라부의 장단에 맞추어 놀아주고 응석을 받아주고 짜증내고 하는 사이
환자 스스로 병의 원인을 직시하게 되고, 순간 치유하는(!) 과정이 반복되죠.
읽으면서 뜨끔한 적도, 과연, 치유받는 느낌이 든 적도 종종 있었지만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라면, '실은 별거 아니다.'라고 느끼게 해준다는 겁니다.
실은 별거일지라도 사실은 또 별게 아니다. 라구요.
도저히 풀 수 없을 것 같은 문제도 잘 지켜보고 있노라면 쉬워지는 경우가 정말 많죠.
이라부의 환자들이 자신을 '관찰'하는 사이 해법을 찾을 수 있었듯.
버스안에서 소설 읽으면서 소리내어 웃어보긴 오랜만인 것 같네요.
무척
즐거운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