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즈미 야마시타 作. 대원씨아이 출판. 역자 미상. 현재 5권까지 출간.
<천재 유교수의 생활>, <마천루의 버디>, <걸 프렌즈> 이후, 4번째로 접하는 카즈미 야마시타의 작품.
그녀의 작품들에는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 중 확실히 눈에 띄는 것은, 하나같이 비범한 주인공들.
특히 이 <불가사의한 소년>에서는 비범하다 못해 아예 '사람이 아닌 자'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는데,
전작들에 비해 좀 더 노골적인 이야기를 하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사람이 아닌 자.'라는 표현은, 베르세르크의 조드, 데니스 강, 효도르, 크로캅 등을 연상시킬 우려가 있지만
어쨌든 천사나 악마, 혹은 신 등의 단어로는 소년을 정의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호칭이다.)
소년은 불가사의한 능력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든 시간대를 날아다니며
가장 소소한 익명의 삶의 순간들을 지켜보거나,
조금 특별한 인간들의 기이한 행적을 돕기도 하고, 반대로 그들에게 역경을 제공하기도 한다.
때론 스스로 중요한 배역을 맡아 좌절과 성공을 경험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주 작은 것과 아주 큰 것, 먼 것과 가까운 것을 넘나들며 소년이 지켜보는 것은 다름아닌, 인간의 '모순'이다.
그것은, 결코 이해할 수 없기에 더욱 간절한 호기심의 대상이며
동시에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핵심이자, 그 이상일 수 없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에 구입한 5권에선, 첫번째 에피소드가 가장 인상적이다.
불가사의한 소년의 존재를 확신하고, 그를 만나고 싶어하는 노학자의 이야기인데,
완벽히 매끄럽진 않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아이러니는 전권을 통털어 가장 훌륭한 수준이라 말하고 싶다.
뿌린 씨가 훌륭한 결실을 맺은 것 까지는 좋다.
그런데 어느 덧 너무 커버린 열매가 넘지말아야 할 선을 넘어 자신을 위협한다면, 씨를 뿌린 사람은 어쩌면 좋을까.
'네가 준 용기로 인한 일생의 성과다. 이것을 빼앗을 양이냐.'고 묻는 노학자의 앞에서 소년은 무엇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어쩌면 이미 정해져있을, 그러기에 더욱 속이 쓰린 이 딜레마의 해답을 지켜보는 것은,
쓸쓸하다.
펴들자마자 이런 이야기를 할 줄은 몰랐기 때문에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잠시 책을 덮고 앉아 있었다.
그간 4권까지 읽어오며 내 멋대로 소년의 정체를 정의해 온 것이 사실인데, '그러지 말아요.'하는 작가의 부탁을 듣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소년도, 작품도 다시 한 번 불가사의한 생명력을 얻었다해도 좋을 것이다. (물론 나에게 있어서.)
본작 <불가사의한 소년>을 포함해 그녀의 작품들은 언제나 나를 놀라게 한다.
너무 크고 막연해서 다룰 수 없으리라 여겼던 이야기서부터 너무 미묘하고 눈에 띄지 않아 그냥 지나쳤던 이야기까지 어느 하나 소홀히 여기지 않고 정면으로 다가선다.
개중엔 '역시 이것은 쉽게 다룰 수 없는 소재이며, 이 작가도 예상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드물게 있지만, 대부분은 아주 훌륭하다.
아니, 훌륭하던 그렇지않던 그것은 아무것도 문제가 아니다.
우회하지 않고 정면으로 다가선다. 이것이 중요한 점이다.
무의식 중에 만화라는 매체가 담을 수 있는 소재와 파격을 정의해 버리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해주는 것이다.
만화는 소소해야 한다. 대단해야 한다. 즐거워야 한다. 슬퍼야 한다. 그것이 어떤식의 정의든.
그녀의 작품엔 다, 골고루 있다.
작가의 말.
결말. 인간은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는 재량을 가지고 있는가.
어디까지가 이기적이고 어디까지가 이타적인가.
독자코너 성숙한 시선들이 부러웠는데,
알고보니 십대 후반. 눈에 대해 지적한 녀석. 난 미칠 것 같았다.
완결 후 작가의 감상.
완결 후 추천의 글.
아이를 지키는 어머니와 아이를 쥐어박는 아버지.
인물들의 표정. 눈. 눈. 그리고 눈.
강철로 되어 있는 소년.
타미야. 고토. 칼. 오른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