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다 지로 지음. 양억관 옮김. 문학동네 출판.
얼마전 책장을 정리하다가 두권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과 다자이 오사무의<인간실격>.
어느 정도의 허무감은 항상 들고 다니지만 특별히 바닥을 기는 상태도 아니었는데, 왜 시니컬한 두 권을 다시 펴들었는지. 얘네들은 왜또 그렇게 척척 달라붙었는지.
마침 샐린저의 책 두권을 회사근처 서점에 주문해 두었는데, 찾으러 가면서도 별로 내키지가 않았다.
샐린저 읽고 또 샐린저라니.
좀 가벼운게 필요했던 참이었다.
그리고 여기, 아사다 지로.
적절히 가볍고 별로 뒤끝이 남지도 않는 인상이다.
(미안합니다, 아사다 아저씨. 한때 야쿠자 셨다던데 담그진 말아주세요. 어떡합니까. 기냥 인상이 그런걸..)
아무튼 그래저래해서 이 책을 집어들었다는 말씀이다.
책의 내용은 간략히 이렇다.
남자는 우연한 기회에 만난 지인의 손에 이끌려 '사고루(모래로 쌓은 누각)'라 불리는 고층 빌딩의 펜트하우스에 들어선다.
그곳에서 열리는 일종의 '기담집회'라 할 수 있는 비밀모임에 동석하게 된 것인데,
주최자와 참석자들 하나같이 여기저기의 명사들이 모여, 위치가 위치인만큼 이제껏 발설할 수 없었던 체험들을 이야기하고 들어주는 자리이다.
이날은 다섯개의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그것이 소설의 본편이다.
참석자들에게는
'과장이나 미화가 없는 체험담을 말할것.
꿈에서라도 발설하지 않을 것.
있는 그대로 말하고, 바위처럼 입을 굳게 닫을 것.'
이라는 규칙이 주어진다.
<사고루기담>이라는 제목에 '기이할 기(奇)' 가 아닌 '비단 기(綺)'자를 쓰고 있다.
'기담'이라는 단어가 언뜻 풍기는 다소 음습하거나 동떨어지게 비현실적인 분위기는 아닌 셈이다.
다섯개의 에피소드들 중 제일 마음에 들었던 것은 <실전화>.
구성보다는 묘하게 애처로운 감상이 마음에 남았다.
첫번째 에피소드인 <대장장이>도 재미있었다.
전체 도입과 잘 맞물려 있는데다가, 전문적인 소재가 줄거리와 잘 섞여 이야기에 존재감을 주고 있었는데,
사소설을 즐겨읽는 나의 경우, 이런 이야기를 접하면 머리가 개운해진다.
마지막 에피소드인 <비오는 날 밤의 자객>은 이 작가의 초기작들을 읽어보고싶게 만드는 녀석이다.
'야쿠자 시절의 체험이 담긴 피카레스크 소설(건달 소설)' 이라는데, 그 이름 <당하고만 있을쏘냐>,<번쩍번쩍 의리통신>.
......
<번쩍번쩍 의리통신>!
제목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기회가 닿았으면 한다.
아무튼 이 소설, 흥겹게 부담없이 읽었던 소설이다.
덧붙여 '사고루'와 같은 공간을 씻김굿의 장으로 그린다면 어떤 질감을 갖게 될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PS1. I readit 카테고리에는 읽었던, 읽고있는 책들에 관해 포스팅 할 예정이다.
PS2. 특별한 일이 없다면, 이 카테고리의 다음 포스팅은 샐린저의 <아홉가지 이야기>에 관한 것이 될 듯.